처음으로 이동


외국어번역: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1-28 (수) 16:18
ㆍ추천: 0  ㆍ조회: 3875      
IP: 1.xxx.101
수박의 역사
홈 > 수박이란?
 
1 수박의 역사
2 수박의 계보
3 수박의 맥을 따라서
4 연혁과 전승노력
5 송준호의 수박이야기
 
 
 
뉴스 홈 영화/음악  기사목록
 

 
18세기 말에 백과사전류로 편찬된 이성지의 재물보( 才物譜, 1798년)에는 "手博仝今之슈벽"(수박은 지금의 수벽과 같다)이고 하여 수벽이 手搏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흔히, "卞 手搏爲卞 角力爲武 苦今之탁견"과 관련하여 해석의 오류가 있는 바 수박은 손바닥으로 치는 것(변)이고 힘을 겨루는 것을 무(武)라 하는데 지금은 탁견이라고 한다. 手搏 = 卞, 角力 = 武 = 탁견이라는 뜻임을 유의해야겠다. 즉, 탁견이라는 말은 200여년전 武를 의미하는 보통명사로서 이는 같은 책의 "시박이란 씨름의 일종인데 역시(또한) 탁견"이라 한 것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벽타(手癖打)]

九屬有手術古自劍技而來對坐相打兩手去來如有一手失法則便打倒名之曰수벽치기.

옛 풍속에 수술(手術)이 있는데 예전에 칼 쓰는 기술에서 온 것이다. 마주 앉아서 서로 치는 것인데 두 손이 왔다 갔다 할 때에 만일 한 손이라도 법에 어기면 곧 타도(打倒)를 당한다. 이것을 수벽치기라고 한다.

劍術先從手術妙
戚將軍己敎兵才
三節?如差一節
拳鋒一瞥落頭來

검술(劍術)은 먼저 손재주의 묘한 것으로부터 온다.
척장군이 이미 군사에게 기예를 가르쳤다.
세 절구(節句)에 만일 한 절구만 어긋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이 머리에 떨어진다.

1921년 최영년(1856 철종7년 ~ 1935)은 <해동죽지>에 관련내용을 싣고 항간의 손뼉치기가 武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증언하고 있다.

1961년 11월 이 희승(문학박사)가 쓴 국어대사전(민중서림)을 보면 수벽(手壁) 명사,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는 장난. 수박(手搏, 拍) 명사, 한국 전통무예의 하나.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수련을 함. 수벽타(手癖打), 수벽치기와 같다.

1895년 스튜어트 쿨린이 지은<코리안 게임스>를 보면 위의 수벽치기가 나오는데 첫번째 수벽의 내용과 동일함을 확인 할 수 있다.

"수벽치기(SYOU-PYEK-TCHI-KI: HAND CLAPPING)" - Games of the Orient: Korea, China, Japan 1895년 원문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그들 중 한 명이 실수하거나 질 때까지 주어진 순서대로 어떤 손동작을 동시에 취한다. 처음에 각각은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넓적다리를 친 다음, 같은 방법으로 가슴을 친다. 그런 다음 손뼉을 치고, 쭉 뻗은 왼손을 오른손으로 친다. 그 다음 손뼉을 치고, 뻗친 오른손을 왼손으로 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손뼉을 치는 동작부터 시작해서 손뼉을 치고 끝나는 마지막 동작을, 두 사람이 처음에 한 대로 세 번 반복한다. 동작이 점점 빨라지면서 놀이는 매우 어려워진다... ***가슴을 치는 동작의 존재로 인하여 그동안 수벽(손벽치기)을 "女兒들의 명랑한 놀이"운운하던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이었는지 알 수 있다. 手搏은 거친시대, 거친사람들이 하던 거친무술이었으며 그 무용적표현인 수박춤 또한, 호탕한 남아들의 것이었슴을 유의해야겠다.

최남선은 '조선 상식 - 풍속편(1948)에서 수박과 수벽은 같은 것, 본래 무예의 하나로서 차츰 주석(술자리)의 여흥, 아동의 요희( 要戱)로 化한 것이다. 그 법은 대개 수지(手指)의 굴신과 권악(拳握)의 진퇴로써 일정한 제약에 의한 승부를 결하는 것인데 본래 무예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술자리의 여흥이나 아동들의 놀이가 되었다" 고 하여 근, 현대에 존재하는 여러 기록들이 수박에 대해 특칭하고 있다.

 
 
권태훈(1990 ~ 1994)옹께선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中 p377 ~ 378에서 수박에 대한 귀한 증언을 하신 바 인용 해 본다.

"수박이란 손을 사용하여 상대방이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타격을 방어하기 위해 연습하는 방법이다. 손은 주먹을 쥐는것이 아니라 편 상태로 상대편 손쪽으로 재빨리 뻗으며 상대방 역시 최대한 빨리 손을내밀어 부딪히는식으로 훈련한다. 흔히 곡조를 띤 소리를 질러가며 박수도쳐 가며 행한다. 두사람이 서로 손바닥을 부딪혀가며 노는 놀이의 한 형태로서 민간에 전해 내려온다".


 1900년대의 사회, 풍속을 찍은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서문당)에 어린 아이가 손뼉치기를 하는 모습이 찍힌 것을 보면 구한말까지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 이전의 사진인 것으로 미루어 특히, 일제시대에 일본아이들의 놀이가 전해졌고 놀이 이름도 쎄쎄쎄라고 한다는 주장은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수벽'의 사전적 定意는 이러하다 - 수벽 ①손바닥 ②두 사람이 서로 보고 앉아 손바닥을 마주치는 장난.

[유희로 남아 있는 수박치기에서 찾을 수 있는 옛 무술의 흔적]

상대의 뒷 목을 끌어 잡고 팔꿈치로 어깨죽지를 찍거나 엎드린 상대의 등을 양 손바닥으로 두드린다던지 세게 치면 벙어리가 된다는 穴인 아문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그걸 찾는다던지 하는 예로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전,문화재위원이셨던 중앙대학교 정병호교수는 필자와의 대담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수박치기를 요즘은 아이들 놀이라고 하는데 원래 그런 것은 아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필봉굿에서도 수박치기를 하는데 아이들 놀이를 왜 어른들이 하겠느냐, 그것도 굿을 하며... 어른들이 교육적인 목적으로 가르쳤든지 아이들이 옆에서 보고 흉내를 냈다고 보는 것이 옳다라고 말이다. 참고문헌[북한 민속원,<농악>, 조운 1964] ***어른놀이가 애들놀이 되는거다. 선조 33년 4월을 보면 비망기(備忘記)로 정원(政院)에 전교하기를 ´... 권법(拳法)은 용맹을 익히는 무예이니 아이들로 하여금 이를 배우게 한다면 동네 아이들이 서로 본받아 연습하여 놀이로 삼을 터이니, 뒷 날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한 기록도 있음에...'

수박은 拍手 곧 손뼉을 의미하며, 수박치기, 수벽치기라고도 한다. 박수는 일본식 어순임을 양지하시기 바란다.

참고 삼아 그 시기 이후에 수박치기를 하며 불렀던 노래 몇 가지를 부언한다.

<조선의 향토오락(朝鮮總督府 調査資料), 村山智順撰, 朝鮮總督府, 昭和16年(1941) > - 1936년 조선총독부에서 각 도지사에게 조회하여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향토오락을 조사, 정리한 것이다(무라야마 지준(1891∼1968, 총독부 촉탁)).

"기러기야 기러기야 어디로 가니
한강까지 간다.
무엇하러 가니
새끼 키우러 간다.
몇마리 키웠니
두마리 키웠다.
너 한마리 갖고 나 한마리 갖자
.......

너의 집은 어디니
작은 시내 넘고 큰강을 건너서 계수나무 있는 곳
할머니는 물길으러 복동이는 절구 찧으러
옥순이는 밥하러 부뚜막 앞에 어머니는 꽃구경 가고
아버지는 물놀이 가고(하략)...
.......

1964년 북한 <조선의 민속놀이> 중...

"종달아 종달아
어디에 갔더랬니
수풀에 갔더랬다
뭘하러 갔더랬니
새끼치러 갔더랬다
몇배 쳤니
두배반 쳤다
나 한마리 주렴
너 왜 주겐
미워도 내새끼
고와도 내새끼
쫑쫑 쪼로롱"
.......

"길가에 파릇파릇
민들래 꽃은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거센 발길에
밟히여도 밟히여도
시들지 않고
또다시 노란꽃이
피였답니다".

이 외에도 구전되고 있는 것이 여럿 있으나 생략한다.

우리가 흔히 "쎄쎄쎄"라고 알고 있는 손벽치기 동작은 1924년 윤극영(尹克榮)선생께서 작사·작곡한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 6/8박자로서 16마디인 이 노래의 가사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반달"에 맞춰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장단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1896년 미국거주 한국인노동자가 녹음 한 음반에 수박치기가 있다. 안정식(전라도사람으로 추정, 이해철 외 총 3명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이전의 이 땅에 손벽치는 놀이와 그 노래 그리고 先在했던 武적, 舞적인 기예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음을 결코 섣불리 부정해선 안 될 것이다.

수박치기(손뼉치기)가 아이들의 놀이라고? 아이들은 대개 어른이 하는거 보고 흉내를 낸다. 교육을 했던지...

 
씨름에 대한 글 중 이런것도 있다. "우리 서로 씨름 할 때 서로 뺨 치지 말고 됴히됴히(조용히) 하자"라는... 조선 숙종 3년(1677)에 권대련(權大連), 변섬(邊暹), 박세화(朴世華) 등이 당시의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를 한글로 풀이한 책에 나온다. 근세 국어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라고 하는데 3백년정도 전엔 씨름하며 뺨도 치고 했나 보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식만으론 그 전부를 온전히 납득하는것이 곤란하지 않겠는가?

=======

 
<<북한 평양출신 김정옥씨의 수박에 대한 증언>>

2007년 2월 중국 심양에서의 수박, 춤 대담 및 증언 녹취; "...수박치기를 수박놀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 무관들이 하던 것이라고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박미란이란 분(45~6세)께 배웠다". 옆에 있던 주임같은 조금 나이든 분도 그러고... 평양출신으로 평양진흥중학교, 평양요리전문학교(학사과정)를 나와 심양에 온지 9개월정도 된다고 했다. 2 ~ 3년 있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는데... 수박춤에 대해서도 알고, 수박치기가 우리말이니 수박은 박수를 말한다등등 한국에서 수박치기를 쎄쎄쎄라고 하며 일본에서 건너 온 아이들의 놀이라고 한다는 말에 북조선에선 수박치기를 민속놀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민속이란 말을 쓰진 않을것이라는등 참으로 "똑"소리 나는 아가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 문화재위원이셨던 고 예용해선생의 '수박' 목격담]

문화재위원을 지내셨던 고 예용해선생님은 수박희를 우리말로 수벽치기라고 하는데, 젊었을때에 서울의 동대문근처에서 수벽치기를 한다는 노인 몇 분을 만난적이 있다면서 그들의 말에 따르면 손을 주로 쓰는 기술이라고 하셨던 적이 있으며, 이 분이 대충 이런식으로 하더라 하며 흉내 내시던 것을 현재 문화재관련, 무예계에 종사하는 몇 분이 증언하고 계시다.

=======

선조실록의 '타권'이 수박의 제몸치기와 흡사하였으나 그 관계에 대한 문헌적 증명이 어려웠으나 당시의 여진족무술로 소개 된 打拳이 곧 "수박"이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하여 인용 해 본다. 

병조판서 이항복이 선조께 아뢰는 내용중에 "신이 그가 거느리고 있는 각 처의 묘족과 만족에 대한 명칭과 사용하는 기예에 대하여 묻자, 총병은 곧 섬라(暹羅)와 도만(都蠻)등 여러 번방에서 귀화한 병사들을 좌우에 세워 놓고 각기 자신의 무기를 잡고 차례로 나와 묘기를 보이게 했는데, 괴이한 형상이 각각 특이하여 보는이의 눈을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무기에는 편가노, 담노, 제갈노, 피갑, 뇌설도, 관도, 월아전, 아창, 등패, 활나인곤, 나인과, 낭선, 타권(打拳), 천봉전, 양가창등의 명칭을 가진 것들이 있었고, 사릉편과 칠십근무게의 언월도 및 수전등의 무기는 총병이 직접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종일토록 구경하고 나서..." <선조실록> 21집, 685면 옮김.

"유격이 타권의 기법을 앞에서 보여줬는데, 그 법은 뛰면서 몸을 날려 두손으로 자기 얼굴이나 목, 혹은 등을 치며, 가슴과 배를 번갈아치기도 하고 볼기와 허벅지를 문지르기도 하는데 주먹쓰는것이 어찌나 빠르고 민첩한지 사람이 감히 그 앞에 접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선조실록> 권 99, 31년 4월 경신.

수박이나 수박춤은 북방계열의 기예이다.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계보의 출생, 거주전승지 및 웃통을 벗고 자기 몸을 손바닥으로 치는 특징적인 행위등과 울로초(만주의 특산품)로 모자나 치마를 만들어 입고 연희하는 전통등으로 고찰할 수 있다. 위의 都蠻은 조선시대 여진족을 뜻하며 당시의 압록강을 중심으로 한 만주와 함경도가 그네들의 터전이었던 동시에 우리역사의 무대였음을 또한, 간과해선 안되겠다.
송창렬옹 그리고 김학현선생님, 두 분 어르신들 모두 함경도북청과 단천이 대대로 고향인 분들이시다. 조선시대 택리지의 팔도총론(八道總論)에서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는 고조선(古朝鮮)과 고구려(高句麗)의 땅이었다"라고 했으며 그 당시 그 곳에 우리 선조들께서 사셨고 지금도, 앞으로도 살게 될 것이다. 수박, 춤은 여진의 몸짓문화로서 소중한 우리네 문화유산인 것이다.

<< 택리지요약본 >>

■팔도총론(八道總論)

팔도의 위치: 조선의 땅은 팔도(八道)로 나뉘어 있는데 함경도,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가 그것이다. 각 도의 지리적 위치는 함경도는 여진과 이웃하고 있고, 강원도는 함경도의 남쪽에 계속된다. 평안도는 중국의 심양에 인접하고(淸의 고도 원래의 봉천), 황해도는 평안도의 남쪽에 계속하고, 경기도는 강원도, 황해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경기도 남쪽은 충청도와 전라도가 위치하고 있으며, 전라도의 동쪽이 경상도이다. 경상도는 옛날 변한(弁韓), 진한(辰韓)의 땅이다. 함경도·평안도·황해도는 고조선(古朝鮮)과 고구려(高句麗)의 땅이었다. 강원도는 별도로 예맥(濊貊)의 땅이었다. (중략) 태조가 왕씨의 왕위를 대신하였던 만큼 그 좌명 공신도 또한 서북도의 맹장이 많았다. 이미 나라를 얻은 다음에는 "서북인은 크게 쓰지 말라" 하였다. 이곳의 풍토가 척박하고 성질이 드세어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아니한 관계로 평안도와 함경도는 살 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 *** ...백정으로 되었다기 보단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군대에 편입했다고 적혀있다. 세종,세조때 기록까지도 만주나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새로 모집해서 친위대(숙위)에 편입시켰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또 함경도에서 계속 거주하기도 하였다. 출처; 한국사한국문화(본회에서 사용하는 여진이란 표현은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을 여진이라한다는 전제에서임을 주지하시기 바란다)

 
여진의 씨름 *** 고구려벽화에서 현재 수박이라 일컫는 것과 각저총의 씨름을 분리해서 이해하는것이 통설이나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떨어져서 박격하는 모습과 붙잡고 힘을 쓰는 특징적인 태양을 나누어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후에 분리, 발전되어 민간에서 전해져 왔다고 보는것이 옳다. 위의 '여진족의 수박그림'을 보라.









명 천계(天啓) 원년(元年, 1621)에 주국정(朱國禎)이 편찬한 <용당소품(涌幢小品)> 권 12, <병기편(兵器篇)>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백타(白打)는 곧 수박으로 겨루는 것(手搏戱)이다. 당나라 장종(莊宗)은 수박으로 내기를 하였으며, 장경아(張敬兒)는 수박으로 공을 세웠다. 세속에서는 타권(打拳)이라고도 하며, 소주인이 말하길 사람의 뼈를 부러뜨려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빨리 죽이고 천천히 죽이는 것은 오로지 수법(手法)에 달려 있다. ***백타나 수박을 동일시하고 맨손무예를 의미하는 보통명사라는 설이 있으나 적어도 위의 타권인 수박은 고유명사인 것이며 그 연장선에 있는 선조실록의 기록으로 동작의 세부적인 특징을 관찰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로써 백타는 태권도경기를 뜻하는데 어떻게 태권도를 뜻하는 수박과 같을 수 있겠는가?

=======

2007년 10월경 모 대회에서 시연에 앞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 중에 장시가 무슨 말인지 아는 분이 계십니까? 라고... 누구도 선뜻 답하지 못하였으나

장시란...

세종실록등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영등포시장이나 동대문시장과 같은 그런것을 뜻한다. 이전시대에는 市場을 場市라 하고 "저 친구 참 대담하다"가 아니라 "담대하다", "나의 명운"등으로 쓰고 읽었는데 그 순서만 바꿔 놓아도 요즘 사람들은 한참이나 혼동을 하니 교육의 힘이란 것을 우습게만 볼 것은 아닌 모양이다. 주지하다시피 수박은 박수를 예전분들이 부르던 어순이며 옛날어른들은 박수친다고 하지 않고 수박친다라고 했을 뿐이다. 풍물에서 손뼉을 마주치며 하는 것을 박수치기라 하지 않고 수박치기라고 하지 않는가? 굿에도 남아있는바 "수박치기"이지 "박수치기"가 아닌것이다. 수박은 박수 곧, 손뼉치는 것을 의미하며 항간에서 수박치기, 수벽치기라고 하는 일련의 것들과 같은것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임을 확언한다.

[수박과 함께 전래되어 온 민간기예들]


 외손질[명사]/ 1 한쪽 손만을 쓰는 짓. 2 = 날치기.

어깨치기[명사]/ 상대편을 어깨로 쳐서 당황하는 사이에 하는 날치기(어깨치기등에 대한 上考를 하기 어려우나 구한말 이후의 것으로 볼 때 '제비치기'등과 함께 민간에 남아 있던 전통체술의 일종으로 이해 할 수 있겠다)

개성의 제비치기 ***한국공보원 원장, 코리아엔젤스무용단 단장을 지내신 김상연님께서 송창렬옹의 상대 무릎 밟고 뛰어 어깨차기를 "개성의 제비치기"라고 증언하신 바 있다. 송창렬선생님은 제비치기가 어떤 무술의 고유한 기술이 아니라 일반적인 낱술기라고 하셨다.

이외에 "날파람"이란 것도 실제 이북지역에서 행해졌으며 해방전의 향유자로서 고당 조만식선생님이 실존하셨음을 양지하시기 바란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평안도박치기 같은 체기 외에도 수박(치기), 각희인 택견, 격도, 제비치기, 어깨치기등 여러 전승 된 맨손무예가 존재하였었다.

벽초 홍명희 洪命熹(1888 고종25 ~ 1968)의 대하소설<임꺽정> 중 '떼밀기' - "네가 떼밀기를 잘한다지. 나두 떼밀겠느냐?" ***굿과 강강술래등에도 수박치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 외에도 살판의 발바닥치기에서 마무리를 할 때 수박의 제발바닥치기를 하는데 이로 미루어 주변문화에 끼친 영향들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은 일제시기 조선의 풍속을 담은 엽서 중 한가지이다. 물론, 연출되어진 것이겠지만 그 바탕에 깔린 정서등은 매 한가지일 것이다. 어느 민족이나 그 특유의 몸쓰임이란 것이 존재하며 우린 예전에 상투를 틀고 다녔기에 싸울 때 우선, 머리채부터 잡고 흔들어 대며 주먹질을 해 댔다고 한다. 이에 대한 구한말 외국인들의 증언이 여럿 남아 있다.



=======

아래는 충북 진천군에서 지원 받아 발간되는 국무논총(國武論叢), 제2호에 수록되어 있는 "수박과 무도(舞蹈)" 관련부분이다.

舞蹈와 무술

수박형태의 맨손 격투술은 1. 혼자서 하는 수련형태 2. 상대와 싸우는 일대일의 격투형식이 있을것이다. 둘이 겨루면 시합이고 혼자하면 시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둘이 하더라도 시합의 목적이 아니면 시연일 수 있겠지만 일단 혼자 할 때는 시연이다. 유사한 말이지만 춤에 있어서도 혼자 할 때가 바로 무용(舞踊)이고 여럿이 같은 형식의 시연이면 군무(群舞)가 된다. 무술의 기원 특히 맨손격투술의 기원을 더듬어가면 춤이라는것도 무(武)와의 깊은 관련이 있다. "즉, 무(武)는 무(舞)와 무(無)와 같은 뜻이다"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춤이 무도(武道)의 기원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오처경, 1197>에 무도라는 표현이 처음 나오는데 중국에는 애당초 무도(武道)란 말은 없고 무도(舞蹈)란 말만 있어 왔다. 현대에 소위 댄스를 무도(舞蹈;춤을 춘다)라고 하는데 이 춤의 기원을 찾아가면 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합예술임을 알 수 있다.

원시적무도에는 기쁨을 표시하는 예술성이 짙은 동작이 있으며 용맹과 위세를 표시하는 박격동작도 있다. 이런 원시적무도가 그 이후의 모든 무도예술의 모형이 되고 무술발전의 내용과 형식이 되었다는 견해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전국 무술 과학연구회,<무술 과학 탐비> 북경, 인민체육출판사, 1990년 8쪽). 사실 무술대련에 앞서 보이는 각종의 품새들은 하나의 춤동작으로 봐도 무방할것이다.

필자는 이점에 있어서 최근 발굴한 송도수박은 내용적으로는 "바라춤과 무당춤"같은 것이 섞여 있고 때로는 태극권의 형태도 나타나기도 하고 마치 군무, 무도와 무술, 무예가 미분화된 하나의 종합적인 원형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마치 원시 무술의 원형을 보는 듯하여 매우 놀랐고 이 연구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이미 밝힌바 있다. 무용은 춤을 추는 주체가 타인에게 자신의 정서나 고유한 전통을 보이기 위한것이다. 예를 들면, 각 민족들의 고유한 의식의 하나인 제천행사에서는 예외없이 춤이 나온다. 제천행사는 민족의 생존을 보장 해 주는 조상신에 대한 감사의표현으로 축제의 성격을 띠게 되는데 쥬신족과 같이 기마민족들은 큰 짐승을 잡아 함께 구워먹으면서 그 잡는 기술과 몸놀림 또 그것을 포획할 때의 기쁨등의 감정이 흥겨운 춤이 되고, 수렵모습이 재연되면서 민족 고유의 무용이 되는것이다. 무용과 관련해서 보다 중요한것은 춤의 형태가 무술형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용이라는것은 결국 몸동작이며 이것은 신체의 유연성과 더불어 민족의 단합과 유대의 강화를 넘어서 일정한 형식을 갖추는데 이것은 마치 무술의 동작이 일정한 형태를 구축하면서 보다 정치화 되는것과 같은 형식을 따르게된다. 따라서 무(舞)는 무술(武術)의 한 모습이고 무(舞)는 무(武)와 같다고 보는것이다. 결국 무도(舞蹈)는 모든 예술의 원천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무도로부터 춤과 무는 차츰 분리되었고 그중 무의 기능은 사람들에게 민간무술이나 전투무술의 기능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사람들은 이 춤사위로부터 기격 즉, 치는 기술이나 격투성 있는 동작을 발전시켜 무술로서의 기술을 추출 해 낼수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무술 과학 탐비, 9쪽> 무술도 발전을 거듭하여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치 무당의 춤과 같이 황홀하면서 신들림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 경지는 무예, 즉 예술의 경지로 승화하여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 본 연구의 동기가 된 송도수박 기능보유자의 시연은 바로 이런부분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기능보유자는 송창렬선생님을 지칭한다. 

사진은 압록강을 뒤로 한 중국장백의 김학현선생이시다.










 
 
<무도미디어 기획 특집기사 “무술의 원형, 고구려시대의 이종격투기 맨손 격투무술 수박을 찾아서> 1편, 수박의 역사(2003년 9월 8일)

맨손무술이란 온몸을 사용해서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맨손 격투술을 말한다. 즉 자신이 신체의 일부나 전부를 사용하여 건강. 체력. 증진. 안전을 도모하는 과거의 동양맨손 무술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맨손 무술은 현대의 다른 무술과는 달리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자유로이 수련 할 수 있는 무형의 기술로서 효용가치가 크다. 맨손무술은 그 특성상 어느 지역이든지 충분히 꽃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중국에는 우슈, 태국에서는 무에타이가 있고 일본에서는 가라데, 몽골의 버흐등 다양한 형태의 맨손무술이 시대별, 지역별로 발전 해 왔다.

그럼 한국의 맨손무술은 무엇일까?

(중략)

 
필자는 최근 아주 특별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고구려 때부터 내려오는 맨손무술을 지금까지 보유, 전수하고 있는 송창열 선생을 통해서 우리 나라의 맨손무술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송창열 선생은 개성태생으로 지금은 김해에 살고 있다. 송창렬 선생의 맨손 무술이라고 하는 그것은 바로 송도수박(手搏)이다. 어린 시절 개성의 유명한 장돌뱅이인 천일룡(개성의 장돌뱅이로 개성에서는 주먹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고 한다)라는 사람으로부터 배워 내려와 지금은 아들인 송준호씨가 전수를 받아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송창렬 선생과의 직접 인터뷰에서 천일룡은 어린 시절 개성에서 유명한 주먹으로 통했다고 한다. 송창렬 선생의 집은 개성에서 금속제조 공장을 했기 때문에 부유했다고 한다. 일제 탄압시기에 송창렬 선생은 가난해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다른 한국아이들과 달리 일본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매일 조센징이라고 왕따를 당하며 몰매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송창렬 선생의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천일룡에게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의뢰를 하고 그 때 배운 무술이 바로 수박이다.

송창렬 선생은 사실 자기가 배운 무술이 수박이라고 배운 적은 없다. 단지 천일룡이 네가 배우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만 말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개성은 일본이 장악한 시절이었죠. 게다가 전쟁이다 뭐다 해서 세상이 어수선한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이 한국문화 말살정책을 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우리 것을 배운다는 것이 금지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를 가르친 천일룡과 여우골(주위에 여우가 다니는 골짜기라 해서 사람들이 가기 꺼려하는 골짜기)에 올라가 몰래 배웠던 것을 기억합니다.”송창렬 선생의 말이다.

(정정기사)
송창열 선생과의 인터뷰에서 천일룡선생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이 '수박타(수박치기)'라고 가끔 말했다고 하는 점이 인터뷰상에 분명히 있었으나 기사작성에서 빠트린점이 확인 정정보합니다. 사실 그 당시에 지금처럼 무술이 단체나 협회 그리고 도장을 통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무술이 전해지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송창렬 선생은 그저 수박을 단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 배웠던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의 스승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목표나 목적이 있어 송창열선생에게 수박을 가르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시대의 시각으로 그 때 당시의 수박수련을 바라본다는 것은 안 될것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협회와 단체을 중심으로 도장문화가 발달하고 도장을 통해서 무술을 수련하고 단을 따는 제도는 일본 무술의 산물이 아닌가. 하여튼 송창열 선생의 인터뷰에서 천일룡으로부터 가끔 네가 배우는게 수박타(수박치기)라고 들었다고 전해오는 점에서 송창열 선생이 배운것은 송도수박임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유일한 수박기능보유자인 송창렬 선생은 1942년부터 50년까지 개성에서 천서방(본명 천일룡)에게서 배운 수박기(手搏技)를 수년간 틈틈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현재 수박의 동작을 하고 있다.

송창렬 선생의 또 다른 증언에 의하면 개성 남문통이라는 시장에서 보부상(장돌뱅이 또는 건달패)들이 싸우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하는데 그들이 싸우던 방식이 자신이 배운 수박과 비슷하다고 하며 수박은 손을 주로 쓰고 발은 막싸움에서 가릴 것 없이 싸울 때 가끔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용어와 관련해서는 수박치기, 어깨, 둘레치기, 물레돌리기, 잡놈지랄떨지마(기술을 쉽게 외울 때 사용했던 암기 법)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 정확한 동작의 이름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그 당시 지도법이 여러 사람들을 통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이름을 붙일, 즉 체계를 갖출 필요가 없이 단순한 동작과 그 응용 법을 교수하던 것이었다는 것은 수박 이외에도 전통적인 기예들에 공통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과연 그럼 수박은 무엇인가? 요즘 말로 표현해서 최초의 이종격투기이였던 우리의 수박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무도미디어에서는 우리무술의 원형이며 최초의 이종격투기였던 수박을 하나씩 파헤쳐보고자 한다,,, 


그림설명: 무용총 (舞踊塚) 수박도(手搏圖) ◈ 소재 : 中國 吉林省 集安縣 通溝 ◈ 광개토왕릉비의 북서쪽 약 1km 지점에 각저총(角抵塚)과 나란히 있다.

일본의 '스모(相撲)'는 수박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남아 있다. 손벽을 치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자기 어깨나 허벅, 가슴등을 치고 搏擊시 주로 손바닥을 사용하는것도 동일하며... 



조선춤 1 
 
조선춤 2
 
 
 
 
 
 
 
 
 

조선통신사에서 유래한다는 일본 스즈카의 무용 중 일 동작이다. 일본의 국기라고 하는 스모(角力, 相撲)의 '시코'(다리를 높게 들었다가 힘 있게 땅을 밟는 것)와 형태상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굳이 수박과의 연관성을 찾아보자면 좌측의 경우 수박춤에서 게걸음을 크게 할 때, 우측은 수박과 수박춤의 기본자세인 날개펴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각저 (角抵)와 관련하여 고금사물원시(古今事物原始)에 "양손을 땅에 대고 머리로써 부딪치는 것"이라는 글도 있다고 한다.

형태상의 유사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수박의 태양으로는 고구려벽화를 필두로 여진의 수박, 각저, 일본의 국기로 알려져 있는 스모 외에도 조선통신사에서 비롯된 '당인(조선인을 의미)춤'과 수박치기, 수박춤, 아이들 놀이 외에도 전래되었던 숱한 지역적인 체기들과 주변문화에 포섭 된 그리고 그러한 기예의 실제행위자들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적지 않은 증언과 가르침들이 있다.

혹자는 수박의 맥이 끊어졌다고도 하고 단순한 애들놀이일 뿐이라고 武와의 연관성을 애써 부정, 비하하는데 바쁘기도 하다. 정말 그러한가? ***혹여 그런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위의 정리하기조차 버거운 수박의 실체들이 오기나 거짓부렁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 주셨음 한다. 필자는 수박을 인정받기 위해 청, 장년기를 모두 바치고 있다. 부정하고자 할 때도 당연히 그정도의 노력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돌을 깨는 手搏]

수박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기록으로 '고려사'에 등장하는 이의민과 두경승의 힘자랑을 많이 드나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한 예전의 격파와 관련한 고려 원종, 조선 숙종때의 기사를 옮겨 본다. 고려 元宗 12년(1271), 낭장 김희목이라는 자가 손으로 돌을 깨는 재주가 있어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그를 직접 만나길 원해 원에 보낸적이 있다하며(고려사, 권27<세가> 27, 원종,1 2년 정월 병자), 조선 숙종때의 박천군수 양익명이 맨손으로 돌을 깨고 선전관 네 사람이 던지는 돌을 손, 발로 쳐 내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이를 장히 여긴 숙종은 下等이었던 그의 근무성적을 없이하고 합당한 관직을 제수토록했다 한다(숙종실록, 권24, 숙종 18년 8월 병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인 송종소(宋宗紹)]

고려 숙종 7년 11월 초하루 임오(壬午)에 왕이 우타천 들판에 이르렀는데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났다. 왕이 시위군사들에게 뒤를 쫒게 했는데 견룡부대 교위 송종소가 맨손으로 때려 죽였다. 왕이 옷을 한벌 하사했다. 고려사, 권11 <세가>11, 숙종7년 ***현대의 보여주기식 武가 아닌 一打必倒의 그것이 당시의 手搏이었슴을 알 수 있다)

=======

'재물보(1798년)'상의 또 다른 전통기예인 '시박'에 대한 궁구

우선 "시박"에 대한 잔존문화를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어려울까? 그렇지도 않다.

누구나 조금만 시간을 들인다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가깝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 정리한 <조선의 향토오락 1941, 무라야마 지준>에 나온다.

내용을 보면 "옆으로 게걸음을 해 가서 어쩌고 저쩌고... 일독을 권해 드린다. 박새라고 되어 있으나 구전의 경우는 박새가 아니라 박시이며 지금도 그렇게 명해지고 있는 지애밟기와 함께 전해져 오는 경북 군위군의 오래 된 무형문화라고 한다. 말 그대로 군위군(軍威郡)의 軍士놀이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박시놀이(成炳禧, 우리 고장의 民俗, 慶尙北道, 1978)

음력 정월 초이틀 팔장을 낀 동네 아이들이 골목 이곳저곳에서 서로 밀며 큰 무리를 형성한다. 곧이어 '박시한다'는 함성을 외쳐대며 집안에 있던 아이들이 하던 일을 팽개치고 골목으로 뛰쳐 나온다.
동네 아이들로만 이루어진 애기박시로 '박시놀이' 서막이 오르며, 온 네의 열기는 한껏 고조되고 동(東), 서(西)부의 청장년들은 보름달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보름달 저녁에 초저녁부터 농악대는 농악을 올리며 '박시놀이'를 알리고 영주수건으로 상투를 동여 맨 청장년들이 서로 어깨를 밀며 놀았던 '박시놀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윽고 편이 갈라지면 지난해 패한 팀이 공격을 시작한다. 이때 팔을 풀거나 걷어찰 수 없는 것이 이 박시놀이의 불문율로 단지 밀어 젖히기만 해야한다.
공격패는 공격하기 전에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골았네 골았네 동(서)부동패 골았네"라며 상대방을 조롱하는 말로 사기를 올린다. 사기가 충천하고 전운이 감돌면 공격이 시작되고 가장 힘이 센 '박수'들이 머리군이 되어 공격을 한다. 어깨와 어깨를 밀치기로 밀고 밀리는 대접전이 오랜시간 계속된다.
주위의 노인과 부녀자들은 징을 울리고 북을 치며 싸움의 흥을 돋우는 일대 가관이 펼쳐진다. 결국 상대방의 박수들을 상대방 진지까지 밀고 가면 이놀이의 승부가 결정되고 이긴 팀은 농악을 울리며 개선하게 된다. ***마을 전체의 승리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요구되는 '박시놀이'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구전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3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승리하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풍요를 바라는 농민의 순박하고 애절한 마음과 이어져 박시놀이가 탄생한 것이다. 1944년 중단됐던 '박시놀이'는 1987년 10월 27일 군위고교 학생들에 의해 재현, 현재도 군위중, 고등학생들에 의해 맥을 잇고 있으며 매년 10월 군민축제때 시연된다(내용중의 "이 놀이의 대장 격인 완력이 세고 기량이 능한 자를 ‘박수’라고 부른다?"는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놀이 뒤에 양 진영의 왈패들이 신작로에서 패싸움을 했는데 이를 '난장박시'라 불렀다고 한다)
 
 
 
기치료,신/무병 가료전문 20년 내공  http://자연치유.org
이화자연치유(한국도법연구원)
 
 
한국자격개발 교수협의회  경락,추나,교정(기치유,심성의학) 교육 및 자격발급
문의: 051 241-1323
민족무예 수박! KBS,아리랑티비 소개
사)대한수박협회

보존회 HOME

쇼핑몰/파워 샵

한국문화저널

다음 보존회카페

- UP -

반갑습니다. 우리 몸짓과 정서를 사랑하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수박과 수박춤은 우리 선조들이 애정을가지고 향유 해 오던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이지만 우리것을 천시하던 풍토의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전쟁, 격동의 시절이 지나며 급격한 서구화등으로 잊혀진 이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뜻 있는 분들과 함께 이 시대에 다시 한번 꽃을 피워 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8월 18일 설립허가(서울시 체육청소년과 2001-14호, 체육.공익법인)

수박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통무예단체"로 분류되고 있으며 국민생활체육(서울시)에 가입, 국고지원으로 년 1회의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본 회의 단체, 업무표장은 특허청 등록사항입니다.

Copyright(c)2012 대한수박협회 지도자연수원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